장로회 제도의 신학적 문제점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5/22 [11:30]

장로회 제도의 신학적 문제점

공헌배 | 입력 : 2020/05/22 [11:30]

 

 

▲     ©장로교타임즈

얼마 전에 장로교 교단 목회자를 대상으로 “21세기 한국 교회에서 장로교 정치 제도는 바람직한 구조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이 질문에 68%아니다는 부정적 응답을 했다고 한다. 장로교 목사가 장로교 정치 제도를 불신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본래 장로회 제도는 목사와 평신도 대표로 구성된 협의회가 교회를 다스리는 대의적 정치 형태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목사가 주도적인 교회이다, ‘장로가 주도적인 교회이다 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장로회 제도의 협의회성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장로회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고민을 안고 장로회 교회의 모체인 제네바 교회의 교회 정치를 간략히 들여다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칼빈 장로회 제도 안에 어떤 신학적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장로회 제도는 성경적 교회를 회복하려는 종교개혁자들의 이념에서 탄생하였다. 장로회 제도의 기원은 15세기 중반 보헤미안-모라비안 형제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형제단은 장로(목사와 감독)와 집사의 이중직의 직제를 갖고 있었고, 장로는 목사와 회원을 지도하고 감독했다.

 

형제단은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여러 번 만났고, 1540년에는 스트라스부르크를 방문하여 칼빈과 부처와 몇 차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츠빙글리(1484-1531)는 취리히 교회에서 설교자의 직분을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시의회의 원로를 초대 교회의 장로와 동등하게 보았고, 그들에게 교회의 정치와 치리를 맡겼다. 하지만 츠빙글리는 1525년 시의회와 별개의 기관으로 목사 2명과 시의회 대표 4명으로 결혼 법정을 구성하였다. 이것이 1년 후에는 도덕 법정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서 장로회 제도의 치리 기구의 씨앗을 발견한다.

 

1531년 스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는 외콜람파디우스의 영향을 받아 교회 관리인이라는 직분을 도입했다. 21명의 교회 관리인단 중에서 3분의 2는 시의회 대표였고, 3분의 1은 평민 출신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목사의 설교와 삶을 감독하다가 1534년부터 목사와 함께 모든 세례 교인의 삶을 감독했다. 부처는 이 교회 관리인을 신약 성경의 장로와 동일하게 보았다. 부처는 사실상 장로회 제도의 건축자였다. 왜냐 하면, 이미 부처에게서 목사, 장로, 교사, 집사의 네 가지 직분이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는 장로회 제도를 시행해 보려는 계획만 갖고 있었다.

 

칼빈은 1541제네바 교회법이전에는 장로회 제도에 대해 잘 몰랐다. 예를 들어, 칼빈은 기독교강요초판(1536.8)에서 마태복음 18:17-18에 근거하여 교회의 치리권이 주교가 아니라 교회에 있다고 하였으나, 이 치리권을 누가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네바 신앙고백”(1536.11)도 마찬가지였다. “출교의 권징은 진실로 우리 주님에 의해 좋은 목적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신자들 사이에 있어야 할 하나의 거룩하고 유익한 것이다.”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누가 어떻게 출교를 시행해야 할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1541년 칼빈은 제네바 시의회의 부름을 받고 다시 돌아온 후, 시의회에 제네바 교회법을 제출하여 승인을 받았다. 여기서 칼빈은 부처를 따라 처음으로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네 가지 직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 제정하신 직제는 넷이다. 첫째는 목사요, 둘째는 교사요, 셋째는 장로요, 넷째는 집사다.” 주님이 바로 이 네 가지 직분을 통해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칼빈은 네 가지 직분 가운데 목사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 성례의 집례, 치리를 맡았다.

 

칼빈은 장로를 성도의 윤리적 삶을 감독하는 직분으로 소개했다. 장로는 교인의 삶을 권징하고 치리한다는 것이다. ‘장로의 직무는 모든 성도의 삶을 감독하고, 그들 보기에 빗나가고 있거나 무질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훈계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그들 자신이, 그 다음에는 다른 이들과 협의하여 형제애적 교정을 부여하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장로는 선하고 정직한 삶을 살고 책망할 것과 혐의가 없고 특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적 분별을 가진 평신도 중에서 선출되어야 한다.

장로는 소의회로부터 2, 60인 의회로부터 4, 200인 의회로부터 6명 등 전체 12명이 선출되어 제네바 시 각 구역에 배치되었다. 장로를 선출하는 방식을 보면, 소의회가 적격자를 지명하고 목사들이 동의한 후에 200인 의회가 승인했다. 그리고 매년 말 장로 직분을 계속 수행할 것인지 다시 결정했다. 물론 신실하게 장로직을 수행하는 한, 그만두게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장로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목사들과 함께 모여 교회의 무질서한 일들을 처리했다. 1561년 개정된 제네바 교회법은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협의회를 당회(consistoire)’라고 불렀다. 본래 콘시스토아는 중세 때 추기경단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제네바 교회에서 목사와 평신도 대표로 구성된 교회 치리 기구를 가리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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